기후변화 리스크 드러나면 국가 신용등급도 흔들린다

입력 2024-02-19 16:11   수정 2024-02-19 16:12


지난해 8월 과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의무 공개로 기업의 탄소 피해가 드러날 것이다’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저자들은 전 세계 1만5000여 개 상장사를 조사해 기후 공시 의무화가 이뤄지면 기업 이익이 평균 44%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탄소 가격을 t당 190달러, 기업의 ‘스코프 1(직접배출)’을 토대로 산출한 결과다.

논문은 피해의 90%가 에너지, 유틸리티, 운송, 소재(철강) 산업에 집중되며 같은 산업 내에서도 기업에 따라 피해 규모 차이가 날 것이라고 봤다. 국가별로는 러시아가 가장 많은 130%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의 이익 감소 예상치는 46%로 인도네시아(90%), 인도(79%), 멕시코(67%), 중국(56%), 남아프리카공화국(51%) 뒤를 이었다. 선진국 중 기후 공시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셈이다. 이는 한국의 기후변화 리스크를 보여주는 결과다.
○기후변화가 신용등급에 끼칠 영향
지금도 명목상 탄소배출권 관련 배출 부채가 존재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재무 정보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채와 비용으로 연결될 것이다. 사실 많은 투자자가 기후 공시가 회계적으로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알고 있다. 논문은 기후 공시 의무화가 투자자에게 중대한 위험(material risk)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가로 눈을 돌리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회계적 손실이 주가의 지속적 약세로 연결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식시장은 오묘해서 마치 ‘합리적 기대가설’처럼 예상한 일이 현실이 됐을 때 주가에 이미 반영했다고 시장이 반응할 가능성도 꽤 있기 때문이다. 또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 저탄소 경영 체제나 기후 기술을 주도하는 사업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을 증명한다면 ‘위기 다음에 기회’라는 야구 격언처럼 주가는 희망을 반영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등급은 다르다. 손익이 부진하고, 자산건전성이 훼손되고, 현금흐름 악화를 확인하면 신용등급은 하락한다. 신용등급 조정은 재무적 변화를 후행해 신중하게 결정되지만 그 결과는 차입비용 변화, 보유채권 가격 변화처럼 직선적이고 엄중하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진은 지난해 8월 과학적 현상인 기후변화가 실제 금융지표인 국가 신용등급에 초래할 변화를 연구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다양한 온실가스 농도 경로(RCP) 시나리오를 활용했는데, 지구온난화에 가장 긍정적인 RCP 2.6부터 가장 부정적인 RCP 8.5까지 네 가지 경로를 활용했다.

연구는 RCP 8.5에서 2030년까지 59개, 2100년까지 81개 국가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국가의 이자 비용 증가액은 최대 2030억달러(약 271조원)에서 최소 670억달러(약 89조원)로 추산됐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기업의 이자 비용도 따라서 증가하는데, RCP 2.6 하에서 최대 170억달러, RCP 8.5 하에서는 최대 610억달러로 예측했다. 기후변화 대응이 미진하면 국가 경제 전반에 부담이 커진다는 결론이다.

참고로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가벼운 이벤트가 아니다. 가까이는 2023년 8월 피치사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notch) 강등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발작적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한국, 이익 감소 예상치 46%
이 연구의 국가 간 비교도 흥미롭다. 신용등급 하락 폭이 절대적으로 큰 국가는 칠레,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이었다. 하지만 선진국도 방어적이라고 볼 수 없다. 국채 신용등급 하락 폭은 기존 높은 등급을 유지하는 다수의 G7 국가에서도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됐다. 신용등급이 AA-인 한국은 신용등급 하락 폭이 샘플 국가의 평균인 2.18등급보다 높은 2.57등급, 이에 따라 추가되는 이자 비용은 12억1000만~18억2000만달러(약 1조6000억~2조4000억원)였다. 신용등급 변화 예측 결과로 봐도 한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국가 경제 시스템 취약성이 평균 이상인 국가다.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열기를 느끼다: 기후 충격과 신용등급’이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후변화 취약성이 1%포인트 증가하면 신용도는 0.23% 감소하고, 기후변화 회복력이 1%포인트 향상되면 국가 신용등급은 0.09% 상승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드러났다. 기후변화 취약성이 1%포인트 증가하면 신흥시장 경제의 신용도는 0.69% 감소하는데, 이는 전체 국가 표본을 사용한 추정 계수 0.23%보다 세 배 더 많은 수치다.

개발도상국은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과 완화(mitigation) 역량이 부족하기에 추정 계수의 규모와 통계적 유의성이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IMF 보고서가 제시하는 정책적 함의는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진의 연구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국가는 공적 금융의 기후변화 대응력 향상 및 신용등급 하락 위험 축소를 목표로 효율적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를 통한 기후 회복력 향상, 재정 여력을 활용한 금융 회복력 강화, 경제적 다각화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나 신용등급으로 보면 선진국에 속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기업 이익 감소와 신용등급 하락 정도로 비교하면 개발도상국이다. 금융 경제적 측면에서 기후변화 회복력이 낮은 국가다. 기후변화로부터 국가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은행이나 공적 기후 금융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신지윤 그린피스 기후 에너지 전문위원·전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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